20년 전, 초년 직장인이었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의 자회사. 해양 시추에 들어가는 장비를 수주 받아 제작하는 회사였다. 한 건의 수주가 수억에서 수천억을 오갔다.
주요 고객은 글로벌 에너지와 엔지니어링 기업들. 석유와 에너지 가격에 따라 업앤다운이 있긴 했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의 버팀목이 되어왔던 전통의 섹터였다.
원가 회계와 가격 분석 업무를 맡는 직책으로 시작했다. 큰 금액의 수주전이 시작되면 밀려오는 요청들로 정신이 없었다. 뭐가 뭔지 정확히 잘 모르면서, 그저 지시받은 대로 이런저런 자료를 만들다 보면 밤늦게까지 앉아있을 때가 많았다. 하루 건너 여러 부서간 미팅에 상사를 따라 들어갔고, 그들이 제공하는 자료를 받아 정리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보고 있던 게 사실은 가격을 만드는 메커니즘 그 자체였다는 것을.
프로세스는 명확했다
가격을 결정하는 흐름은 명확했다. 영업팀이 수주 정보를 가지고 오면, 설계·구매·운영팀이 달라붙어 기술과 제작을 검토하고 필요한 견적과 예산을 짠다. 재무팀은 과거 실적 데이터와 여러 가지 공통비 배분율, 가정 사항 등을 반영해 최종 수익성 시뮬레이션을 돌린다.
[가격 결정 프로세스]

흐름 자체는 깔끔했다. 그러나 이 일정을 거치는 동안, 관련 부서들과 회의실 곳곳에서 충돌이 생겼다. 처음에는 그게 단순히 “의견 차이”인 줄 알았다. 시간이 지나서야 알았다. 그건 의견의 차이가 아니라 이해관계의 차이였다.
그리고 그 이해관계의 자리는 네 곳에 있었다.
회의실의 네 자리
영업팀이 먼저 입을 뗐다. 시장의 온도를 말하며 등을 떠밀었다.
“사업주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 가격 아니면 입찰 기회조차 없다.”
수주를 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데이터는 한 방향으로 기울어 있었다.
설계·구매·운영팀의 입장은 정반대였다. 장비를 실제로 만들어야 하는 부서들. 견적보다 실제 원가가 더 들면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
“이번 시추 장비 스펙이 까다롭다. 원자재 시세도 불안하니 버퍼를 고려해야 한다.”
그들이 건네는 견적 데이터에는 “최소한 이만큼은 들어간다”는 방어막이 두텁게 쳐져 있었다.
이 두 자리 사이에 재무팀이 앉아있었다. 어쩌면 가격 자체에는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자리. 이익률이 10%든 15%든 재무팀 일은 결국 거기에 맞추어 숫자를 집계하고 결산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만약 그 수주가 0%거나 마이너스가 난다면 — 가장 큰 책임을 피할 수 없는 사람도 또 재무팀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자리 위에 사업부 대표가 있었다. 사업부 대표에게 한 건의 수주는 자기 사업부의 한 조각이었다. 본능은 명확했다. 15%는 남기고 싶다. 가능하면 20%. 내가 책임지는 사업이니까.
네 자리, 네 가지 입장. 같은 한 건의 수주를 두고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신입의 자리
거기 어딘가 내 자리가 있었던것 같다.
영업팀에서 받은 시장 가격, 운영팀에서 받은 견적 원가와 하도 협력업체 견적, 과거 유사 프로젝트 실적, 공통비 배분율, 환율 가정, 자재 시세 가정, 컨틴젼시, 기회 비용. 이런 것들을 모아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몰랐다. 상사가 시키는 대로 숫자를 넣고, 합계를 맞추고, 결과를 출력했다.
그런데 그 출력물이 회의실에 들어가면, 거기서 또 한 번의 충돌이 시작됐다. 영업팀은 “이 가정은 너무 보수적이다”, 운영팀은 “이 견적은 너무 낙관적이다”. 같은 숫자를 두고 양쪽이 동시에 불만을 표했다.
처음엔 내가 뭘 잘못 넣었나 싶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양쪽이 다 불만이면, 그 숫자는 대체로 맞았다. 한 건 한 건의 결산은 들쭉날쭉했지만, 한 해를 결산해보면 회사와 그 사업부는 늘 비슷한 자리에 서 있었던것 같다.
내가 돌리던 그 시뮬레이션이 사실은, 이 네 자리 사이의 충돌을 조율하는 유일한 언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그때 회의실에서 본 풍경과 진행되었던 프로세스들은, 어쩌면 대부분의 회사가, 그들의 상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결정하는 자리에서 반복되고 있을 것 이다. 규모만 다를 뿐이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의 수천억짜리 장비든, 작은 식당의 메뉴 가격이든 — 작동하는 메커니즘은 같다.
누군가는 팔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만들어야 하고, 누군가는 결산하고 책임진다. 그리고 그 사이에 그 가격을 결정하는 데이터가 있다.
이 시리즈에서는 그 자리에 한 명씩 들어가 본다. 각 자리에서 무엇이 보이는지, 무엇이 보이지 않는지.
다음 편 — 가격을 만드는 사람들 ② 영업팀: 수주가 곧 실적인 사람들